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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달

[스타벅스 30대 신입 바리스타 일기 3편] 한달차, 새로운 직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소통 문제 (겸손한 개복치의 사회생활)

달은 4월 중순에 입사해서 교육 2-3주 차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멘탈이 깨진 달은 3주 차 근무하는 5일 내내 진지하게 퇴사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경험상 새로운 직장에서, 특히나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으레 일어나는 적응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버텼다.

 

달은 흔히들 말하는 예술가형 인간이다.

좋게 표현하면 그렇지 직장생활에서는 본인도 동료도 상사도 피곤하고 다루기 힘든 유형이다.

감성적이고 예민하며, 상처를 잘 받으니까.

그렇다 보니 달은 20대 시절 우울증을 달고 살았고, 삶이 고달팠으며 하루하루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지옥 같았다.

 

상처 받고 퇴사하는 빈도가 주변 친구들보다 많아지면서 자존감은 바닥을 쳤지만 적어도 어딘가에는 나에게 맞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때문에 휴식기라면 휴식기였지 경제활동을 포기하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지속한 것이 나름의 굳은살을 만든 것일까,

30대가 된 어느 날, 직장 생활의 질과는 별개로 꾸준히 출근하는 것이 괴롭지 않게 되었다.

근면한 이들의 무던한 꾸준함을 지독히도 부러워했었는데, 10여 년을 부러워하니 적어도 출퇴근에 무던해지는 것은 가능해진 것이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아무튼, 그 직장 생활과 별개로 꾸준히 출근하는 스킬을 활용해 매일 직장에 나가 하루를 보내는 스스로를 지켜보았다.

퇴사에 대한 생각은 했지만 정확한 답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 퇴사가 하고 싶은 건지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다 알아챈 것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다.

덮어두고 보는 습관 때문에 인지하지 못한 관계의 문제였다.

 

 

내가 사료 먹을테니 너가 돈벌어와라

 

 

사건이 있었다.

교육할 때 슈바님들은 레시피를 완벽히 숙지했느냐 라고 질문을 하는데

달은 아무리 외워도 완벽하게 외워지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다. 바에서 음료도 안 만들어 보고 재료 위치도 모르는데 눈으로만 본 레시피를 어떻게 완벽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하다고 자신하는 것은 거짓이고 오만이라고 생각하는 달은

절대 완벽하다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 아주 적절한 말로 답했다.

할 수 있는 만큼 노력 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속마음: 실습 교육 오늘이 이틀 짼데 해봐야죠..)

 

얼마나 적절하고 이상적인 말인가.

달은 자신의 현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 말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면 슈바님들 태도는 미묘하게 바뀌었다.

아주 미-묘하게 경멸하는 눈빛과 공격적이고 다그치듯 정말 어린아이 가르치듯 교육을 했고,

실습이 병행되어야 학습이 완성되는 달은 그들과 자신이 원하는 v완벽v을 위해 교육을 원했지만, 반대로 원하지 않았다.

왜? 집에서 5, 6시간 외워 정리한 레시피도 슈바님 앞에선 백지가 되어버렸으니까.

백지 된 레시피를 처음부터 다시 외우면 이미 외웠던 것이 흐트러졌다.

당연한 거다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매일 집에 가서 완성되지 않는 완벽 을 위해 애쓰고 매장에서도 가르침을 잘 받기 위해 애쓰지만, 이미 외웠던 것조차 백지가 되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 달은 결국 멘탈이 나갔다.

교육을 중단하고 탈의실 문 잠그고 꽤 울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달이 잘못한 것은 없다.

차가운 슈.바님 개인의 문제다.

인간적으로 달이 답답하거나 싫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달의 상태는 슈바님의 요구대로 (그놈의) 완벽하지 못해 자신이 없었고

외웠는데 바에서는 긴장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 스스로의 기억력에 답답하고 화가 났고

슈.바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얼어붙는 자신의 어리버리한 태도가 자존심 상하고 싫었다.

당시엔 하도 자책하느라 슈바님의 말투가 객관적으로 어떤지 조차 판단하지 못했다.

 

그 후 감정을 추스르며 CS 업무만 하고 있는데, 점장님이 안부를 묻는 바람에 달은 급발진을 해버렸다. (서러운데 누가 건들면 더 서러운.. 뭐 그런 거다.)

달은 점장님한테 다른 사람을 구하셔야 될 것 같다며 징징 울었고, 면담을 잡게 되면서 점장님은 잘하고 있다고 별 것 아닌 거라고, 교육 속도를 늦춰주고 근무 시간도 조절해 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고 회유하셨다. (점장님은 천사다)

 

사실 그 순간의 마음은 이랬다.

점장님의 뜻과 실제 교육 상황은 다르다구욧!!! 

마음은 이미 사직서 제출이었지만,

직접 면접 보고 합격시켜 준 점장님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 이후에 다른 슈바님과의 교육에서 또다시 다그침을 인지하면서 달은 조금 화가 났다.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 교육을 자꾸 혼나는 기분으로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못 참으면 퇴사니 달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슈바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상처 받는다, 지금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다. 잠시만 내버려 둬 달라 고 말했고, 교육 이후 슈바님이 사과를 했다.

달 역시 공격받는 느낌이라 조금 날카롭게 말한 부분에 대해 사과했고 그 이후부터 대부분의 고통과 고민이 해소되었다.

 

 

글보다 형태로 인식하는 편이라 이론 공부에 약하다. 안타까운 노력의 흔적.

 

 

잘하고자 애쓰던 달

노력하는 만큼 돌아오는 건 없고

혼나는 기분에 상처가 쌓여가고 있었다.

참으면 곪는다.

그리고 퇴사한다.

하지만 달은 이기고 싶었다.

퇴사해봐야 다그치고 비웃던 그 누군가에게 털끝만큼도 타격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괴로운 와중에도 일이 재미있었다.

일이 좋으니까 괴로운 생각과 별개로 몸은 날아다녔다.

이 것이 달이 퇴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 보는 건데

달이 했던 대답은 슈바님들에겐 정말 물음표와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교육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기준을 세울 수 없는, 참으로 답답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아니 이 정도도 준비 못해? 왜 이것도 못해?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여전히 달은 교육받는 중이고 학습을 진행 중이다.

레시피는 제조 속도가 빠르진 않아도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다.

달라진 건, 더 이상 퇴근 후 몇 시간을 학습으로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보고, 안되면, 다시 외우면 된다.

늦고 합리적이지 않지만, 예민한 달이 터져버리는 것보단 낫다.

 

그리고 어느 날은 아무것도 읽지 않고 휴식한다.

무조건 정보를 머릿속에 쑤셔 박으며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외운 것을 천천히 실습하며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물론 느리고 눈치도 받고 뒤에서 욕 좀 먹겠으나,

알게 뭔가?

자기 속도에 맞춰 사는 게 최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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